디지털이 항상 정답인가

90년대 말 인기를 끌었던 만화 카우보이 비밥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보통 매 에피소드 마다 현상금 정보를 알려주는 빅 샷이라는 티비 속의 광고 모습이다. 캡처를 한번 해봤다.

카우보이 비밥은 207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주선이 자동차 고속도로 들락날락 하듯이 행성과 우주 공간을 넘나드는 진보된 과학 기술을 보여준다. 그런데 위의 그림은??

가로 흰색 선으로 표현된 노이즈가 보인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티비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디지털 티비에서는 이런 노이즈는 없다. 디지털의 특징인 “있다” 아니면 “없다” 처럼 나오거나 아예 안 나오지 아날로그 라디오나 티비처럼 지직이는 노이즈는 없다. 이 만화의 작가가 이걸 의도적으로 그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2010년만 되어도 모든 티비를 디지털로 바꾸려고 하는데, 2071년이라는 미래에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전송되는 티비가 있다는 건 퍽 흥미롭다.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요즘 티비 수신 방법을 디지털로 바꾸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완전한 디지털로의 이행을 예고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었고 독일도 2010년에 끝난다고 한다.

사실 디지털 신호 기반의 TV 혹은 고화질 HDTV는 장점이 엄청나다. 디지털 기반이므로 완전히 컴퓨터와 같다. 요즘 판매되는 디지털 신호를 받는 HDTV는 아마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가 올라가있을 것이고, 채널 변경이나 타임머신 같은 부가 기능은 일반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으로 처리된다. 개발도 훨씬 쉬울 것이고 과거 아날로그 티비에 비해 엄청나게 예쁘고 편리해진 인터페이스 구현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장점에도 불구 디지털 티비가 가지는 단점도 만만치 않다.

  1. 전송 딜레이가 있다. 같은 채널을 하나는 아날로그 티비로 하나는 디지털 특히 HD 화면으로 보면 거의 1초 이상 차이가 난다. 아무리 빠른 컴퓨터를 쓰더라도 방송국에서 신호를 보낼 때 압축을 해야하고 이걸 다시 티비에서 디코딩해야 하므로 원초적인 딜레이를 피할 수 없다.
  2. 채널 변경에도 딜레이가 심하다. 요즘 정말 최신 HDTV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1년 정도된 엑스캔버스 HDTV의 채널 변경 딜레이는 별로 달갑지 않다. 일반 방송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HD 신호로 바꾸면 1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다. MPEG 기반의 디지털 압축의 특성 때문이다. 최초로 몇 프레임을 열어야만 온전한 이미지 재생이 가능하다. 만약 튜너의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10개 이상의 많은 튜너를 내장하고 자주 보는 방송을 미리 프리펫칭(prefetching)한다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3. 부팅 시간이 길다. 이건 이미 핸드폰에서도 겪는 문제다. 아날로그 티비는 파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켜지지만 디지털 티비는 몇 초 걸린다. 말 그대로 티비 속의 컴퓨터가 부팅하는 시간이다.
  4. 수신 환경이 나쁜 곳에서는 아예 시청이 불가능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화면에서 이야기 했듯, 디지털의 특성 상 신호가 약하면 아날로그처럼 열화된 정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진다. 만약 MPEG 코덱의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면 모를까 현재 압축 기술로는 힘들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아날로그는 오래된 것의 대명사, 디지털은 최신과 첨단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별로 이런 일반인들의 인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디지털 기반의 제품들이 우수하나 항상 이것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극한 환경 속에서, 지진이 났다거나 응급 상황에서 과연 디지털 기반의 라디오나 티비가 효과적일까?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고민 끝에 디지털 티비로의 전환을 추진하겠지만 아날로그는 언제나 버려져야 할 구닥다리 기술이 아니다.

그래서 2071년의  카우보이 비밥의 저 아날로그 노이즈가 기억에 더 남는다.

by object | 2009/06/28 12:39 | 나머지 | 트랙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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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kkung's me2DAY at 2009/06/29 10:58

제목 : 민영의 생각
디지털이 항상 정답인가...more

Commented by Alias at 2009/06/28 12:45
지진예보에서 저 디지털 딜레이가 특히 문제라고 하죠... 보통 심상찮은 강도의 P파 시그널이 오면 경보 쏘는데 진원지에 가까운 곳에서는 불과 몇 초 정도 차이로 생사가 갈리기 때문에 (방석뒤집어쓰고 손 머리 올리기 또는 책상밑에 들어가기)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지 일본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9/06/28 12:46
아날로그가 정답이지요.. 라고 하면 너무 무성의할까요 헐..
Commented by 헤르메스 at 2009/06/28 13:22
영화 다이하드 4.0 에서 적나라하게 나오죠.
Commented by 천하귀남 at 2009/06/28 14:41
불편한 정도는 되지만 못쓸정도는 아닙니다. 지연문제의 경우 기술발달로 몇년안에 해결될문제고 수신불가의 문제역시 기술적으로 해결가능합니다.
오히려 아날로그로hd방송을 하려면 문제가 더 심합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6/28 14:53
머...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 vs 디지탈이라는 구분 방식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기는 합니다...

아날로그라는 기반 위로 디지탈이 올라가 있다고 해야 하나.....

Commented by mooni at 2009/06/28 14:59
문제는 전파 자원은 지극히 제한적이라 최대한 아껴야한다는 겁니다.
비압축 비상 채널은 언제나 필요하고, 상업적인 용도로 쓰이는 채널은 디지털이 거의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Commented by 유겸애비 at 2009/06/28 15:07
현실은 아날로그이고 디지털로 그를 simulate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인데 그 과정에서 유리해 지는 것도 있고 불리해 지는 것도 있는데 그냥 아날로그로 냅두는게 나은 경우도 많은거 같아요. 컴퓨터 그래픽 쪽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거 같구요.
Commented by likejazz at 2009/06/28 22:48
채널 변경 딜레이는 아마 채널 재핑(Zapping)타임이라고 하죠?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MS의 IPTV 방식이 가장 짧다고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기술이 진보하면서 여러가지 신경쓸게 늘어난건 별로 달갑지 않네요. 지금도 제 TV앞에는 리모콘이 3개나 있습니다. 각각의 리모콘 버튼도 20개쯤 되는것 같아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6/28 22:51
tv카드로 HDTV를 보는데 채널변경딜레이는 확실히 짜증납니다. ㅡㅜ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9/06/29 00:35
하아... 제가 2년동안 저 바닥에 발을 들였었는데...
개발이 훨씬 쉽긴 커녕 디버깅은 태평양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T.T
살다살다 저렇게 방대한 스펙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팅해서 올라오려면 몇 초가 문제가 아닙니다.
standby에서 올라와도 그보다 더 걸립니다.
여하튼 방통위가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당장 지상파 데이터방송 건이 코 앞인데 IPTV나 떠들고 다니는 넘들이니 대체 정신은 어디에...
Commented by Draco at 2009/06/29 04:22
디지털TV도 아예 1아니면 0인건 아니고 화면에서 일부가 깨지는 경우가 있긴 있더군요.
집에 옥외안테나가 안좋아서 간혹 신호가 끊기거나 불량한 경우가 생기는데...가로선이 생기는건 아니고 영상이 멈추거나 JPG파일이 깨졌을때처럼 중간 아래부터 일정 높이 부분이 통채로 잘려버리거나, 접히는 형태로 나오더라구요 ㅎㅎ 꽤 신기했습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9/06/29 09:49
네 말씀대로 그런 일은 가능합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HQ를 지원하는데 바꾸면 보통 녹색의 깨진 화면이 보이죠.그런데 보통 재생하는 루틴에서 검사를 철저히해서 그런 패킷을 처리 안 하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좀 더 기준을낮추면 깨진 화면도 나가게도 할 수 있죠. ㅎㅎ
Commented by 귀여운동생님 at 2009/06/30 00:22
블루레이 플레이어 사놨다...
Commented by 장모군친구 at 2009/06/30 08:53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분야는 장모군이 전문인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9/06/30 15:03
장모군이시라면 민성형님을 말씀하신 것 같네요. 사실 민성형님에게서 이야기 좀 들었죠 ㅋㅋㅋ
Commented by kirrie at 2009/07/02 22:43
최근에 LCD TV를 구입해서 공중파를 HD로 보자니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 그런데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HD 화질의 경우 움직임이 느리거나 정지된 화상의 화질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지만, 입자가 작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는, 예를 들어 비가 오는 장면이나 분수대를 클로즈업한 화면일 경우는 알리아싱 현상이 너무 심하더군요.
Commented by object at 2009/07/02 23:09
아무래도 mpeg 코덱 특성 상 그런 양자화 노이즈가 있죠. 대역폭을 늘려서 빗레잇을 늘리면 나아질까요. 아니면이미지처리로 보완을해야..
Commented by 꾸닥 at 2009/07/05 19:27
디지털에서 노이즈가 없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근거에서 말씀하시는 건지요?
Commented by object at 2009/07/05 22:01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요? 아날로그 라디오와 디지털로 송신되는 인터넷 라디오를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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