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오늘 박찬호가 대단한 활약을 했다. 왕년의 모습이 나온 것 같다. 한 번씩 미친듯이 무실점으로 막는 폭주도 보였고 거기에다가 어이없이 홈런 맞아주는 것까지 과거의 그를 보는 것 같다. 96년 불펜을 오고 가면서 5승 5패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97년부터 본격적으로 LAD의 선발투수로 나선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대학교 1학년이었던 97년에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었다. 박찬호가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눈 비비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숙사 동에 하나 있던 티비 앞에 앉아 쌩판 모르는 애들과 박수치며 응원했던 박찬호. 잠 자느라 아침 1교시 들어간 기억이 없는데 박찬호 야구를 보기 위해 일어났던 것이다.

박찬호 덕분에 MLB가 우리나라에게 본격적으로 수입이 되었고 구린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비교를 당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터진 IMF 덕으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관중은 점차 줄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박찬호 이 한 선수로 인해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또, 프로야구계도 관중을 다시 끌어 모이기 위해서는 결국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그래서 롯데리스 버거만 있던 잠실 구장에 버거킹 버거도 들어오고…

97년만 해도 우리에게는 선발투수 예고제라는 제도가 없었다. 박찬호가 언제 선발로 등판할지가 날짜로 쫙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우완 선발투수를 위장으로 내서 상대방 타선에 좌타자가 많이 나오도록 한 뒤, 바로 투수를 바꾸는 꼼수를 자주 부렸다. 심지어 포스트 시즌에도 이런 꼼수를 썼었다. 투수 분업화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당연히 5인 선발로테이션 이런 것도 없었다. 선발-셋업-마무리라는 개념도 없었다. 퀄러티 스타트라는 개념도 몰랐다. 투수가 몇 개나 공을 던졌는지도 야구 중계에서 전혀 말 해주지도 않았다. 이런 낙후된 우리나라 야구 수준이 박찬호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굳이 박찬호가 아니었어도 발전은 했겠지만 박찬호가 확실한 촉매제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008년의 롯데를 보면 메이저리그 뺨치는 완벽한 5인 선발 로테이션이 돌아간다. 물론 한 때 마무리였던 임경완 작가님의 잦은 집필 활동으로 많은 롯데 팬들이 어이 없어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우리 야구 정말 많이 발전했다. 97년 중간 계투로 나와서 황당한 20승을 쌓은 투수 김현욱, 99년 마무리 투수 애니콜 임창용이 평균 자책점 1위에 오르는 참혹한 선수 기용을 생각하면 정말 발전했다. 그러나 야구장은 그대로다…

97년에는 KBS가 박찬호를 중계해주다가 98년부터 그 당시 경인 인천방송이 거액을 주고 박찬호 중계권을 따 온다. 그리고 박찬호가 텍사스로 가는 FA 대박 먹튀쑈를 펼치자 MBC가 MBC-ESPN을 만들고 한국 야구 중계를 때려치고 MLB만 해주기 시작했다. 그 때 참 프로야구 팬으로부터 MBC 욕 많이 먹었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박찬호의 대삽질은 시작되고 MBC는 안절부절. 김병현과 형저메 히삽 초이가 좀 반짝 했지만 별 도움이 안되었고. 그러나 또 웃긴게 그렇게 MLB 야구 중계를 열심히 배운 MBC-ESPN이 지금 프로야구 중계를 제일 잘 하고 또 많은 영향을 타 방송국에게도 주었다.

박찬호라면 잊을 수 없는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전. 한 이닝에 한 타자에게 연속으로 만루 홈런을 맞아주던 그 포스가 떠오른다. 지지리게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는 불운한 선수. 김병현은 월드시리즈에서 이틀 연속 역전 홈런 맞아주고도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끼는데 불쌍한 박찬호.

0801695P BREWERS V DODGERS

97년, 아파트 놀이터 부근을 걷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이 야구 놀이 하고 있었다. 한 녀석이 투수를 하고 한 녀석이 포수를 하는데,

내가 박찬호 할테니 니가 피아자 해!

그렇다. 박찬호는 투수의 대명사, 피아자는 포수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박찬호는 그런 존재였다.

by object | 2008/06/22 16:30 | 나머지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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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6/22 16:51
한만두, FA먹튀쇼, 포스트시즌 진출경험 0... 참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지만 그래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숩니다. ^^;

정말 박찬호로 인해 MLB가 대중화되고 흔히들 세이버매트리션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야구쟁이들도 늘어나고 국내야구의 중계나 팬 수준들도 높아졌지요.

가장 먼저 진출했고, 또 지금까지 홀로 메이저 무대를 지키는 걸 보면 또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
Commented by 하느니삽 at 2008/06/22 17:08
IMF 때 박찬호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었죠. 요즘 박찬호가 약간 부활기미를 보이니 또다시 경제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는데, 정말 경제위기가 오고 있는 듯 합니다. -_-;;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23 08:22
이승엽까지 살아나면 더욱 더.. ㅎㅎ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8/06/22 20:36
그나저나 한만두의 전설은 정말 지구 멸명시까지 영원할듯 합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23 08:21
한만두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한 이닝 만루 홈런 두개... 그 때 중계 보면서 참 황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실 한 경기 연타석 만루홈런 기록은 97년에 삼성이 엘지를 상대로 정경배 선수가 기록 한 적이 있죠. 그런데 더 희귀하게 한 이닝에 그게 이뤄져야 하니..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6/23 12:36
거기다 타순이 한바퀴 돌아 '같은 선수'에게 맞아야 되니까 거의 불가능한 기록이죠... ^^;

전 그 중계를 보지 못해서 정말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ㅡㅜ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23 13:58
조금 더 희귀한 기록으로 이승엽이 한국에 있을 때 1회말에 만루홈런을 친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 이승엽은 거의 3번 타자로 나왔죠. 1999년 8월 7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 3번 타자로 출전한 이승엽이 1회 말에 만루홈런을 치는 진기록을 기록합니다. 만루홈런을 칠 당시에 이미 점수가 7-0이었고 그날 경기는 24-5로 이겼네요. 상대투수는 김유봉이었군요.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23 15:38
Commented by tan at 2008/06/23 11:11
야구 그만 보고 공부해요~
Commented by 티티 at 2008/06/23 23:29
박찬호와 피아자라... 예전에 하드볼 4 게임할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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