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컴퓨터 용어 한글화

언제부터인가 (MBC ESPN의 중계 덕분인지 몰라도) ‘디펜딩 챔피언’ 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우리말로 하면 전년도 우승자 정도가 될 것인데 왜 저런 쓸데 없는 외래어를 쓸까? 또 언제부터인가 (역시 MBC ESPN의 MLB 중계 덕분에) ‘스윕’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그냥 우리말로 싹쓸이라는 말을 쓰면 될 것을 왜 영어를 쓸까? 이 두 단어를 활용해서 짧은 글짓기를 해보자면 “디펜딩 챔피언 SK가 롯데를 스윕했다”. 글쎄다. 오늘 유로 2008에서 그리스가 진 것을 “디펜딩 챔피언 그리스가 졌다” 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최근까지 가장 꼴보기 싫었던 광고 문구 중 하나는 네이버가 내건 ‘시즌 2’ 그리고 ‘에피소드’ 어쩌고 그러는 거. 미국드라마의 열풍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보기가 참 아니꼬왔다. 정작 미국드라마에서는 드라마 방영할 때 시즌 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이없는 영화 제목은 계속 된다: “위 오운 더 나잇”. 이거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라는 영화 제목을 봤을 때, “위 오운 더 나이트” 정도가 되어야할 것인데, 나이트라고 쓰면 무도회장이 연상되어 나잇으로 썼나? 또, “원스 어폰 어 타임” 이라는 영화 제목이 보이더라. 당연히 외국 영화인 줄 알았다. 아니더라. 그것도 배경이 일제 시대. 희한한 영화 제목. 영어 몰입 교육엔 반대하지만 또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영어를 마구 쓰는 건 아이러니.

 

그렇다고 cache를 은닉처, zombie process를 강시 처리기로 바꾸자는 소리는 아니다. 컴퓨터 분야로 오면 정말 어느 수준까지 우리말로 써야할지 참 난감하다. Buffer overflow는 그냥 버퍼 넘침보다 버퍼 오버플로우가 가장 자연스럽다. 비록 위에서 주장한 나의 논리에 따르면 약간 모순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Out-of-Order’는 '비순차로 말끔히 번역이 된다. 그러나 CPU 여러 컴포넌트 중에 Reorder bufferReservation s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 번역된 인사이드 머신이라는 책을 보면 ‘재정렬 버퍼’와 ‘예약소’ 라는 용어로 번역이 되어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용어를 영어로 배워서 한글 용어가 무척 낯설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재정렬 버퍼는 합리적이다. 그런데 Reservation Station은 참 번역하기가 힘들다. 실제 이 장치가 하는 역할을 미뤄볼 때, 실행 장치들을 쓴다는 것을 ‘예약’ 하는 행위이므로 예약이라는 말은 합리적인데, station을 ‘소’라고 번역한 뒤 합성을 하면 좀 어감이 낯설다. 그냥 ‘레저베이션 스테이션’ 이라고 쓰자니 너무 길다. 사실. 보통 줄여서 각각 ROB (미국 사람들은 그냥 뢉으로 발음), RS라고 그냥 하지만.

Cache miss/hit은 내가 생각하는 바와 거의 같다. ‘캐쉬 미스’와 ‘캐쉬 히트’로 풀어져있다. 캐시냐, 캐쉬냐 이것도 논란거리인데 아무리봐도 캐쉬가 더 적절한 발음이다. 다만 히트 대신에 그냥 ‘힛’으로 쓰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Branch History Table과 Brach Target Buffer도 각각 ‘분기 이력 테이블’과 ‘분기 목적지 버퍼’로 번역이 되어있다. 흠, 이것도 참 갈등. 그냥 난 그대로 ‘브랜치 히스토리 테이블’, ‘브랜치 타겟 버퍼’가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Control Hazard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제어 해저드’라고 번역하였는데, 그냥 컨트롤은 컨트롤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데이터 의존성 가운데 False dependencies라는 것이 있다. False를 ‘거짓’으로 번역하고 있다. 거짓보다는 가짜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역시 쉽지 않은 대목. Register renaming은 그대로 ‘레지스터 리네이밍’으로 쓰고 있다. 레지스터 새이름짓기보다는 당연히 그냥 리네임이라는 영어를 노출하는 것이 명확하다.

마지막으로 speculative execution을 나도 동의하고 책에서도 ‘예측 실행’으로 번역하고 있다. Speculative의 사전적인 의미는 투기적인데, 실제로 speculative execution (브랜치 뿐만 아니라 memory load에서도 speculative execution이 일어난다)을 보면 ‘예측’이라는 의미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영어로 predictive가 아닌 speculative라는 것을 썼는데 그렇다고 ‘투기’라고 쓰면 땅 투기가 생각나서 거시기하다. 이게 다 ‘투기’라는 말에 대한 반감을 많이 심어준 2MB 때문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인사이드 머신에서 사용된 용어가 잘못되었고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언뜻 봐서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는데 어느 것이 더 좋을까라고 고민이 될 뿐이다. 어렸을 때 국어 시간에 외래어와 우리말을 합쳐서 합성어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배웠다. 그래서 ‘재정렬 버퍼’를 보면 불편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이 책을 번역한 친구들도 컴퓨터 아키텍처하는 친구들이라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학부 수준을 넘는 전산 과목의 용어를 한글화하는 것은 참 어렵다.

by object | 2008/06/11 08:28 | 컴퓨터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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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백승우 at 2008/06/11 08:45
서점에서 DB관련 책들을 보다보면 '재해 복구'라는 용어가 튀어 나옵니다. 이건 뭔지 ㅡ ㅡ;;
몰라도 영어를 번역해서 ... DB에 태풍이라도 온겁니까 ㅎㅎㅎ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6/11 09:13
저도 원작 소설이 '안개'라는 제목으로 번역도 돼 있는 영화 제목을 굳이 '미스트'로 지은 걸 보고 잠시 황당했었습니다. 제 느낌이지만 '안개'라는 단어의 어감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그걸 '미스트'라고 불러버리니 느낌이 다 달아나버리더군요. -_ㅜ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09:22
재해 복구.. disaster를 그렇게 번역했나봅니다. 그리고 그냥 영어 쓰고 외래어 쓰면 뭔가 있어보이는 것 같으니 그렇게 했나 봅니다.
Commented by 쿨짹 at 2008/06/11 09:25
옷 스킨이 넘 멋져요.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0:53
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uriel at 2008/06/11 10:04
false dependency는 잘못된 의존성 정도면 무난하지 않나요? 정작 이런 한글화의 문제는 false를 잘못, 거짓, 가짜 등의 여러 단어로 변역하게 되는 점이죠.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0:52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False dependency는 Anti-, Output- dependences를 가리키는데 잘못된 것은 아니고 register renaming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의존성이죠. 그래서 거짓과 가짜가 적당합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져야한다는 의미가 강해서.. 약간 어감이 다르네요.
Commented by uriel at 2008/06/12 14:59
그러고 보니 "data dependency" 쪽 얘기네요--;

전 자료구조 관련 의존성을 생각하고 의존성 tree를 만들 때를 생각했었군요..
Commented by JOHN_DOE at 2008/06/11 10:33
declare 랑 define 이 울나라에선 똑같이 정의 ㅠㅠ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0:52
Declare는 선언이라고 친절히 번역해주는 사람도 있죠. ㅎㅎ
Commented by chungsuk at 2008/06/11 10:41
새대학물리 쩝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0:57
98학번이후인가봐요? ㅋㅋ 대신에 초반에 moment of inertia 같은 용어를 이해하느라 고생 좀 했다는
Commented by felucca at 2008/06/11 12:17
http://ropas.snu.ac.kr/lib/term/
아키 용어들을 좀 넣어볼까요? ㅋㅋ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5:03
우리가 직접 하나 만들어보자. 저긴 아키 용어 넣기에는 좀 무섭군.
Commented by XJeongseok at 2008/06/11 13:12
민장이형,

형 블로그 내용중에서 코드의 글꼴이 IE에서는 bitstream으로 나오고 파폭에서는 다른 글꼴(돋음체?)로 나오네요.

형의 의도는 bitstream이겠죠? ㅎㅎ
Commented by object at 2008/06/11 15:06
비트스트림이 의도인 건 맞는데 지금보니 그냥 courier new로 나오네;; 흠.. 둘다.. IE에서도 빗스트림으로 안나온느 듯. <pre>로 줬는데.. 에 모르겠다
Commented by 이상훈 at 2008/06/11 16:47
전공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에 대해서 별 의견이 없습니다만,
영화 제목은 정말 공감 합니다. 언젠가부터 저렇게 쓰더군요. 제목을 그대로 읽는 식.
Commented by 엔즐군 at 2008/06/11 16:55
학문에 관련된 것은 영어표현을 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급 학문(대학 이상의 학문)의 경우 국제적인 단위로 연구가 되고 지식이 공유되니까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쓰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말로 번역된 말도 있어야하겠지만, 어쩔 때는 더 햇갈리니까요.

그리고 영화제목의 경우, 외화제목을 번역하는 건 몰라도 우리나라 영화가 영어 제목을 쓰는 것은 예술행위의 일종으로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감독의 생각으로 보자는거죠.
Commented by nagne at 2008/06/15 09:58
엔즐군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도 일상에서 영어표현을 자재하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다라고 여깁니다. 우리나라글의 존속여부도 걱정은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어표현으로 알아두는 것이 더 이롭기 때문이죠.(one source multi use 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번역된 용어가 많이 쓰이는 '금융'세계등을 보면 어떤 것이 과연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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