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구현

논문을 보거나 글을 읽다 보면 “바닐라 구현(Vanilla Implementation)”라는 말을 종종 본다. 무슨 뜻일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의 기본 맛이다.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제일 좋지만, 다른 맛이 가미된 아이스크림보다 화려하지 않고 밋밋한 편이다. 실제로 바닐라가 영어로 ‘평범한’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바닐라 구현이라는 이야기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갖춘 것을 뜻한다.

썰렁한 소리겠지만 요즘 프로그램들 너무 정신이 없다. 컴퓨터 새로 깔면서 각종 프로그램들의 최신 버전을 받아 까는데 훌륭한 업그레이드도 있지만 보통 정신만 사납게 만든다. 뭐 그렇게 기능을 많이 구겨 넣고 별로 원치도 않은 서비스도 해주겠다고 과잉 친절을 보이는지. 그냥 난 바닐라 (특히 하겐다스 바닐라 빈) 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다. 제발 소프트웨어도 싸구려 맛 없는 인공 색소 듬뿍 그런거 말고 고급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만들자.

 

베스킨라빈스 까는 의도는 아님.

by object | 2009/07/02 20:14 | 컴퓨터 | 트랙백 | 덧글(6)
디지털이 항상 정답인가

90년대 말 인기를 끌었던 만화 카우보이 비밥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보통 매 에피소드 마다 현상금 정보를 알려주는 빅 샷이라는 티비 속의 광고 모습이다. 캡처를 한번 해봤다.

카우보이 비밥은 207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주선이 자동차 고속도로 들락날락 하듯이 행성과 우주 공간을 넘나드는 진보된 과학 기술을 보여준다. 그런데 위의 그림은??

가로 흰색 선으로 표현된 노이즈가 보인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티비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디지털 티비에서는 이런 노이즈는 없다. 디지털의 특징인 “있다” 아니면 “없다” 처럼 나오거나 아예 안 나오지 아날로그 라디오나 티비처럼 지직이는 노이즈는 없다. 이 만화의 작가가 이걸 의도적으로 그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2010년만 되어도 모든 티비를 디지털로 바꾸려고 하는데, 2071년이라는 미래에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전송되는 티비가 있다는 건 퍽 흥미롭다.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요즘 티비 수신 방법을 디지털로 바꾸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완전한 디지털로의 이행을 예고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었고 독일도 2010년에 끝난다고 한다.

사실 디지털 신호 기반의 TV 혹은 고화질 HDTV는 장점이 엄청나다. 디지털 기반이므로 완전히 컴퓨터와 같다. 요즘 판매되는 디지털 신호를 받는 HDTV는 아마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가 올라가있을 것이고, 채널 변경이나 타임머신 같은 부가 기능은 일반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으로 처리된다. 개발도 훨씬 쉬울 것이고 과거 아날로그 티비에 비해 엄청나게 예쁘고 편리해진 인터페이스 구현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장점에도 불구 디지털 티비가 가지는 단점도 만만치 않다.

  1. 전송 딜레이가 있다. 같은 채널을 하나는 아날로그 티비로 하나는 디지털 특히 HD 화면으로 보면 거의 1초 이상 차이가 난다. 아무리 빠른 컴퓨터를 쓰더라도 방송국에서 신호를 보낼 때 압축을 해야하고 이걸 다시 티비에서 디코딩해야 하므로 원초적인 딜레이를 피할 수 없다.
  2. 채널 변경에도 딜레이가 심하다. 요즘 정말 최신 HDTV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1년 정도된 엑스캔버스 HDTV의 채널 변경 딜레이는 별로 달갑지 않다. 일반 방송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HD 신호로 바꾸면 1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다. MPEG 기반의 디지털 압축의 특성 때문이다. 최초로 몇 프레임을 열어야만 온전한 이미지 재생이 가능하다. 만약 튜너의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10개 이상의 많은 튜너를 내장하고 자주 보는 방송을 미리 프리펫칭(prefetching)한다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3. 부팅 시간이 길다. 이건 이미 핸드폰에서도 겪는 문제다. 아날로그 티비는 파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켜지지만 디지털 티비는 몇 초 걸린다. 말 그대로 티비 속의 컴퓨터가 부팅하는 시간이다.
  4. 수신 환경이 나쁜 곳에서는 아예 시청이 불가능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화면에서 이야기 했듯, 디지털의 특성 상 신호가 약하면 아날로그처럼 열화된 정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진다. 만약 MPEG 코덱의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면 모를까 현재 압축 기술로는 힘들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아날로그는 오래된 것의 대명사, 디지털은 최신과 첨단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별로 이런 일반인들의 인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디지털 기반의 제품들이 우수하나 항상 이것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극한 환경 속에서, 지진이 났다거나 응급 상황에서 과연 디지털 기반의 라디오나 티비가 효과적일까?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고민 끝에 디지털 티비로의 전환을 추진하겠지만 아날로그는 언제나 버려져야 할 구닥다리 기술이 아니다.

그래서 2071년의  카우보이 비밥의 저 아날로그 노이즈가 기억에 더 남는다.

by object | 2009/06/28 12:39 | 나머지 | 트랙백(1) | 덧글(17)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by object 2008 이글루스 TOP 100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민영의 생각
by kkung's me2DAY
IT분야에서, 일이 더딘 사..
by Effortless - 上善若水 - ..
메뉴릿

한RSS 구독자수 website counter

한RSS에 추가

Add to Google

rss

skin by 이글루스